1. 언어를 기억한다는 것
아직 어린아이들이 어른의 말을 잘 이해하고 능숙하게 언어를 구사하는 모습에 놀란 적이 많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학창 시절 6년 동안 영어를 배웠어도 자유롭게 영어를 구사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간단한 인사조차 하기 힘들지만, 유아는 공부를 하지 않아도 능숙하게 언어를 구사하고 있다. 그런데 유아가 언어를 기억하고 사용하는 것이 우리들의 눈에는 간단하게 보일지는 모르겠으나 실은 상당히 복잡한 과정에 의해 학습이 이루어진다. 본 장에서는 발달 과정에서 아이들이 언어를 어떻게 기억하고, 기억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중심으로 알아보고자 한다.
2. 말이 나오기까지
갓난아기는 태어나면서부터 울음소리를 낸다. 이 소리는 호흡과 함께 규칙적인 리듬으로 기계적으로 나는 소리이다. 이 소리를 소위 규환발성이라고 하며, 생후 2~3개월이 되면 감소하면서 대신 비규환발성이 증가한다. 비규환발성은 울음소리보다는 약하고 부드러우며 여러 종류의 소리가 나는 발성이다. 비규환발성은 언어에 있어서 음성의 기초가 되며, 이 시기는 어른의 부름에 대해 응답성으로 보이는 발성도 나타난다. 비규환발성 이후에 나타나는 발성은 옹알이이다. 이 소리는 영아의 발성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으로, 생후 3~4개월경부터 보이기 시작해서 7~8개월 경이되면 절정에 달하고, 첫 단어가 나오기까지 계속된다. 옹알이는 무언가를 전하려는 의도에서 나는 소리가 아니라 언어음을 내기 위한 연습이라 볼 수 있다. 영아는 소리를 내면서 입 모양이나 혀 위치 등을 바꾸어 가면서 어떤 음이 나오는가를 듣는다. 특히 다양한 옹알이 가운데 맘마, 엄마 등에 가까운 발음을 하게 되면 부모는 좋아서 미소를 보내거나 복창하거나 대상물을 가리키는 등 여러 형태로 아기에게 반응을 보여주는데, 이러한 모자간의 상호 작용으로 인해 영아의 언어 능력은 점차 향상되며 첫 단어의 출현으로 이어지게 된다. 영아는 특별하게 단어를 중심으로 암기하지는 않는다. 이들은 주위에 존재하는 여러 사물, 인간, 사물과 사물,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를 보거나 들으면서 주위 환경을 이해해 나간다. 이러한 활동을 인식이라 하며, 이러한 인식 발달은 언어 발달과 깊은 관계가 있다. 언어는 상대방에게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고 사물이나 어떤 현상을 표현하거나 그것을 하나의 개념으로 정리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영아가 언어를 기억하는 과정에서 자기 주위에 존재하는 사물이 무엇이며 어떠한 특징을 지니고 있는지에 대한 이해를 하지 못하면 언어로 표현할 수 없다. 영아기에는 입이나 손을 사용한 조작기능을 통해 주위 사물들을 이해하고 그들의 관계를 인식하게 되는데, 이런 인식 활동은 언어 발생의 전제 조건이 되며, 상호 밀접한 관련성을 지니고 있다.
3. 영아의 커뮤니케이션
언어 습득에 있어 또 하나의 중요한 요소는 양육자와의 정서적 관계와 커뮤니케이션의 교환이다. 아기를 바라보는 어머니의 모습을 생각해 보면 부드러운 목소리와 미소, 행복한 표정 등을 쉽게 연상할 수 있다. 또한 어머니가 아직 언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아기에게 끝없이 말을 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아마 내 말을 못 알아들으니까 이야기를 하지 말자라고 생각하는 어머니는 없을 것이다. 어머니의 이러한 자극에 대해 아기는 미소를 보내거나 소리를 내거나 어머니를 계속 응시하는 등 다양한 반응을 나타낸다. 이러한 어머니와 영아와의 상호작용에 의해 두 사람 사이의 정서적 관계가 형성되면서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부모와의 상호 작용에서 언어 습득과 관련된 중요한 행동 가운데 공명 동작을 들 수 있다. 생후 1개월도 채 안 되는 아기를 대상으로 30~40cm의 거리에서 마주 보고 입을 벌리거나 혀를 내밀면 아기도 상대방과 동일한 행동 반응을 보인다. 세상에 태어난 지 한 달도 채 안 되는 아기가 어떻게 자기 자신이 상대방과 동일한 얼굴을 하고 있으며, 어떻게 상대방의 입에서 내미는 혀와 동일한 혀를 자기도 가졌다는 사실을 인식할 수 있을까? 생후 1개월도 안 된 아기가 이러한 것들을 학습했다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이러한 행동은 인간이 눈앞의 대상을 자신과 일체화하고 상대방과 대화하고자 하는 욕구, 소위 커뮤니케이션의 근본이라고 볼 수 있는 기능을 생득적으로 갖추고 태어난다고 밖에 해석할 수 없는 현상이다. 한편 영아의 커뮤니케이션 능력과 관련된 또 하나의 행동으로 엔트레인먼트 현상을 들 수 있다. 엔트레인먼트란 두 사람의 대화 장면에서 이야기하는 사람이 신체를 움직이면 듣는 사람도 상대방의 언동에 맞추어 신체 일부분을 미소하게나마 움직이면서 듣는 현상을 말한다. 이에 관한 연구에 의하면 생후 12시간밖에 되지 않는 신생아에게 대화식 언어, 모음만으로 구성된 언어, 규칙적으로 무언가를 두드리는 소리를 각각 제시한 결과 대화식 언어 자극에 대해서만 정확히 엔트레인먼트 반응이 보였다. 이처럼 대화식 언어에 대해서 반응을 보이고, 다른 소리 자극에 반응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준다. 또한 영어나 중국어에 상관없이 대화식 언어에 반응을 보였다는 것은 대화식 언어라고 하는 소리 자극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구조에 대해 신생아가 동조행동을 보였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기 때문에, 이 실험 결과는 인간 언어에 의한 대화가 신생아의 반응을 유도하는 고유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즉 신생아는 인간의 언어에 반응하는 생득적 반응 시스템을 선천적으로 갖고 있으며, 이는 커뮤니케이션의 기초 능력을 인간이 출생 시점으로부터 이미 소유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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